나도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현재까지 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 없이 군복무 시기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20년 입대 당시의 저와 2022년 전역할 때의 제가 이토록 다른 사람이 되었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저는 육군 정보대대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사회에서는 만들 수 없었던 공대생 친구를 많이 사귀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수많은 공대생 전우들, 특히 소프트웨어와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이들과의 18개월은 저의 세계관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당시 법학 전공자였던 저는 세상을 후행적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은 옳다" 혹은 "저것은 그르다"는 식의 가치 판단이 저의 사고의 중심이었습니다. 이는 어쩌면 법이라는 학문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법은 언제나 현상을 뒤따르며, 이미 존재하는 현상을 규율하기 위한 사회적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사고는 자연스럽게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성은 정치적 이념이 아닌, '창조적'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보수성입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를 공부하는 전우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미 일어난 일을 판단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만들어갈 세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인가", "그 세상에는 어떤 서비스가 필요할까"를 고민했습니다.
즉, "선행적"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습니다.
특히 저에게 영향력을 가장 많이 끼친 전우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쉬는 시간이면 항상 창업 구상에 몰두했고,
개인정비 시간에도 책을 읽으며 아이디어를 빌딩해 나아갔습니다.
외국 공대 출신이었던 그 친구는 실제로 사회에 있을 때 창업을 한번 도전한 경험까지도 있었습니다.
세계를 상상하는 능력과 그 상상을 실천하는 실행력을 갖춘 그 모습이 제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도 저렇게 멋있게 살고 싶다..."
그 친구를 보면서 들었던 생각입니다. 개인적으로 그 친구의 삶이 빛나보였습니다.
트렌드를 만드는 선도자 같았고, 역사를 만드는 개척자 같이 느껴졌습니다.
(전역한 지 3년이 넘었지만, 이 친구와는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씩 Zoom으로 만나 세상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제 마음이 작아질 때마다 존재만으로도 큰 용기를 주는 소중한 동지이자 참 고마운 벗입니다)
이렇게 저는 공학도들에 대한 선망을 가슴에 품은 채 전역했습니다.
나도 할 수 있어. 한번 해보자
제가 군복무를 하고 전역할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소프트웨어 열풍이 불던 시기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풍부해진 시장의 유동성은 수많은 투자를 이끌어냈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스타트업들이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이며 치열한 경쟁을 펼쳤습니다.
말 그대로 스타트업의 백가쟁명 시대였습니다.
당시 미디어는 연일 토스, 당근 같은 떠오르는 유니콘 기업들을 예찬하였고
"Defi"라고 불리는 블록체인 Web3 서비스들은 평등한 금융의 비전을 제시하며 새로운 혁명에 대한 환상을 심었습니다.
이때 저는 역사를 바꾸는 건 법이나 제도가 아니라, 이런 혁신적인 서비스임을 당시 느꼈습니다.
전역한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공학도들의 창의적인 사고에 깊은 감명을 느끼던 저는,
“나도 세상을 바꿀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열망에 사로잡혔습니다.
하지만 문과생에 불과한 저는 그런 서비스들을 감히 만들 자신이 없었습니다.
단순히 수학이 싫어서 문과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정치, 철학, 사회 이야기를 즐기는 100% 문과형 인간이었기에 더욱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제 안에 있던 패배주의가 다시금 스멀스멀 기어 나왔습니다.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한숨을 쉬며 생각했습니다.
"에휴... 이번 생을 글렀다. 다음 생에는 공대생으로 태어나야지"
그날따라 잠이 오지 않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뒤척였습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갈수록 복잡해지는 고민 속에서 문득 어디선가 용기가 솟아났습니다.
“아니야. 이번 생에 한번 해보자. 문과라도 할 수 있어. 전과하자!”
어떻게 보면 무모했고, 또 어떻게 보면 나름 담대한 결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의 SW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하룻밤의 선택이 제게 3년간의 방황을 가져올 줄은...
현실의 벽은 높았다
원대했던 꿈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미래는 불안정했습니다.
우선 창업을 하고 싶어서 전과를 했지만, 만들고 싶은 서비스가 없었습니다.
아뿔싸… 창업이 하고 싶어 전과까지 했는데, 막상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조차 정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목적 없이 단순히 IT제품과 그 산업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빛나보여서 전과한 저의 큰 실수였습니다.
일단 개발역량을 쌓기 위해 "노마드 코더"라는 강의를 들으며 프론트엔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멋쟁이사자처럼"이라는 대학연합 창업동아리에서도 활동했습니다.
그러나 창업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도, 정작 열정을 쏟을 만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서비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업을 하고 싶어 전과를 했지만, 아이디어가 없어서 우선 개발 공부를 지속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빠르게 변화하는 개발 생태계에 적응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자바스크립트를 배웠더니 이번에는 타입스크립트를 배워야 했고,
React.js를 익혔더니 이제는 Next.js를 배워야 했습니다.
기술 트렌드는 너무 빠르게 변했고, 배우고 배우고 또 배우기를 반복했지만,
언제나 수박 겉핥기만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전혀 깊어지는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또 막상 학교에서 배우는 CS(컴퓨터 공학) 과목은 너무 어려웠습니다.
깊어지기 위해서는 CS를 알아야 하는데, 이건 수박 겉핥기도 못하겠더군요...?!
학점은 간신히 C를 면하는 수준이었고, 그것마저도 전과 후 사귄 컴공과 친구가 하나하나 떠먹여 준 덕분에 간신히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에게는 아직까지도 고맙습니다.. 덕분에 졸업한다,, 친구여..)
저는 이러다 어중이떠중이가 되어서 아무것도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때마침 미국발 투자 감축으로 스타트업 시장에 돈줄이 말랐고 인공지능의 발전은 IT 노동시장을 박살 내었습니다.
취업의 문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좁아지고...
소프트웨어 공부는 나랑 안 맞고...
창업 아이디어는 생각이 안 나고...
결국 저는 지난 2년간의 도전이 실패했음을 받아들이고 2024년 2월에 코딩에서 손을 놓았습니다.
2024년은 전화위복이었을까
사실, 2월에 코딩을 포기하기 전에 치명적인 실수를 하나 저질렀습니다.
그 전년도 12월, 대학에 휴학계를 제출했던 것입니다.
졸업까지 단 1학기만 남았지만, 취업에 대한 자신이 없던 저는 1년간 휴학하면서 개발 공부에만 집중해 취업을 준비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2월, 코딩을 포기하기로 결정한 후 휴학을 취소하려 했으나,
이미 등록금 고지서가 확정된 상태여서 휴학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제가 받고 있던 희망사다리 장학금과 관련된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헉…”
졸업도 하지 못한 채, 하고 싶은 일조차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1년이 붕 떠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반강제적으로 진로 고민을 위한 1년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우선, “행정사”라는 법률 자격증에 도전했고,
로스쿨 준비도 살짝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행정사 시험에서는 1차만 합격한 채 2차에서 불합격했고,
로스쿨 준비를 위해 본 LEET 모의고사 점수는 정말… 처참했습니다.
그렇게 2024년 10월까지, 저는 어느 하나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없는 우울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사실 2024년 초부터 저는 깊은 무기력증에 빠져들었습니다.
지난 2년간의 코딩 도전이 실패로 끝났다는 생각이 저를 짓누르기 시작했고,
이는 제 자신감과 자존감을 크게 흔들어놓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행정사 시험에서 실패하고 로스쿨 진학 가능성마저 희박해지면서, 제 자존감은 더욱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습니다.
스스로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패배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니... 사실 저는 정말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돈만 쓰고 어떤 성과도 못 내는 패배자...
시간과 돈만 허비한 채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현실이 저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들에만 매몰되어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시도라도 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에 유튜브에 영상을 한번 올려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를 위해 영상편집을 배우기 시작했고, 실제로 콘텐츠를 제작하여 업로드도 했습니다.
영상 편집을 배우면서 저는 AI가 문화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혁명적인 영향력을 직접 체감했습니다.
실제 촬영 없이도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동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된 현실이 놀라웠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최초로 실제 배우의 초상을 활용한 AI 영화 "나야 문희"를 접하면서, AI가 가져올 변화를 더욱 선명하게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5년 안에 문화예술 분야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이폰의 등장이 소비자의 혁명이었다면, AI의 등장은 생산자의 혁명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혁명의 첫 신호탄은 문화콘텐츠 시장에서 터질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의 세계의 모습이 제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려졌습니다.
웹소설 작가들은 AI를 활용해 웹툰 작가가 되거나 웹드라마 감독으로 변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예인들의 퍼블리시티권(초상권)은 마치 이모티콘처럼 거래되어 웹드라마 제작에 활용될 것입니다.
AI 기술은 언어의 장벽도 허물어뜨릴 것이며, 이는 글로벌 작품의 대량 출현으로 이어져 제2의 OTT 혁명을 촉발할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 속에서 문득 한 창업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 AI 혁명의 최전선에 서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을 느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이 아이디어를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매주 일요일마다 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제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을 블로그에 기록하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 아이디어가 공개되겠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과 함께 성장해 나가는 여정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다.
다음 주부터는 제 창업 아이템 제작기를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27살의 청년입니다.
성공이든 실패든 올해는 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만드는 데 온전히 헌신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무언가는 이루어내리라 믿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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