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함께 근로하는 동료가 읽어보라고 건네주었다.
『 구의 증명 』
처음에는 무슨 수학 관련 책인 줄 알았다.
" 응...? 구의 증명..? 나 구의 넓이 구하는 법도 몰라"
수학 알러지가 있는 나는,
제목을 보자마자 온몸이 항히스타민제를 찾았다.
"아니야 이거 사랑 이야기야"
"사랑..? .. 오케이 그럼 한번 읽어볼게"
책을 폈다. 조금 읽다 보니 전체적인 책의 흐름을 알 거 같다.
책 속의 '구'는 다행히 수학의 무언가가 아니었다.
사람 이름이었다.
하지만, 수학책이 아니라는 안도감 보다도 역겨움이 나를 먼저 찾아왔다.
구는 죽었다.
근데, 구의 여자친구 '담'은 죽은 구를 먹고 있던 것이다.
담이 구를 먹는 장면은 꽤나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슬픔에 미친듯, 울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식인으로 애도하고 있었다.
그녀는 왜 구를 먹어야만 했나
왜 구의 장례를 끔찍한 식인으로 치러야 했는가
사실 이 책은 사랑 이야기 보다 더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본다.
단순히 구와 담의 비참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비참하다 못해 너무나도 끔찍한 현실을 보여준다.
구와 담에게는 그 어떠한 희망도 미래도 없다.
희망..
판도라의 상자 속에는 온갖 재앙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 재앙 중에는 희망도 있다.
희망은 미래에 있다.
원하는 미래를 욕망하기 때문에 힘들고
원하는 미래를 갖을 수 없음에 더욱 괴롭다.
그게 희망이다.
하지만, 구와 담에게는 희망이라는 절망조차 없었다.
희망이 없는 삶은 더욱 끔찍하다.
무의미한 삶을 단지 생존해 가는 기계에 불과하다.
의지할 수 있는 희망이 없는 그들은,
비참함으로 예정된 미래를 꿈꾸기보단
지금 당장 눈 앞에 있는 서로를 사랑했다.
구는 담을,
담은 구를,
인생의 목적이자 희망이자 이유로 삼았다.
그들의 삶에 희망이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돈"
그들은 가난했다.
그들은 부모도 없고 의지할 가족도 없었다.
구는 10대 때 부터 부모의 빚 때문에 공장을 다녀야 했다.
부모 없이 살아온 담의 옆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이모만이 있었다.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 본 책 174p
부모가 그들에게 남긴 DNA는 오직 가난뿐이었다.
그들에게 인생을 모든 게 고통이었다.
구는 담에게 말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그리고 구는 담에게 바랐다.
" 네가 나를 죽여주면 좋겠어. 병들어 죽거나 비명횡사하는 것보다는 네 손에 죽는 게 훨씬 좋을 거야"
'모든 게 고통이니, 삶의 전부인 그대가 나의 고통을 끊어달라'는 말로 들렸다.
그러나, 정작 죽은 것은 구였다.
그리고, 구는 비명횡사했다.
마침내, 구를 먹고 있는 것은 담이었다.
책을 보고 있자 하면, 작가의 자본주의 비판의식이 느껴진다.
끔찍하고 처참하게 식인의 장례식을 치르며 자본주의의 잔인함을 말하는 거 같다.
또한, 불교가 말하는 일체개고의 정신도 얼핏 보인다.
작품 속 담의 이모는 비구니의 삶을 살다가 담을 키우기 위해 다시 속세로 내려왔다.
작중 특정 요소들 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체적인 흐름에서 불교의 향기가 났다.
사실 책을 다 보고도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이 많다.
왜 담은 구를 먹을 수밖에 없었을까?
책 제목은 왜 또 구의 증명인가?
결국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자본주의의 비참함인가?
의문을 자꾸만 만드는 책이었다.
사랑이야기.. 음.. 아닌 거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유쾌한 기분보다는
찝찝하고 역한 기분이 든다.
만약 이를 작가가 의도했고,
자본주의가 낳은 구와 담의 불행을 독자들도 느껴보라고 한 것이라면,
작가는 성공했다.
재미는 있었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궁금했으니까.
그러나, 기분이 좋은 재미는 아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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