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흰 눈이 창덕궁 처마에 소복이 쌓인 날, 24년 1월 17일
반년 동안 나의 월요일과 수요일을 함께 해주었던 "공감"의 마지막 출근이었다.
나의 마지막 일정은 마로니에 공원 옆 건물에서 이루어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회의 참여였다.
사실, 참여라는 표현이 무색하게 나는 한 발작 물러나서 장추련 공동체 구성원들의 회의를 지켜보았다.
이 날은 장차법(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전면 개정을 위해
우리 조인영, 조미연 변호사님부터 시작해서
많은 변호사와 장추련 활동가들이 함께 하였다.
대략 2시간 정도의 짧지 않은 회의였음에도, 분위기는 아주 희망찼다.
내가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다들 파이팅이 넘친다고 하니, 구성원분들은 웃으시며 손사래를 치셨다.
그들은 몰랐겠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 나에게는 보였다.
그들이 만드는 아름다움이
그들이 내뿜는 열정과 자긍심, 할 일을 분담할 때도 서로 도우며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하려는 모습들,
그 모든 것들이 이 회의를 아름답게 해 주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 조금 엿보았다.
'법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시작하는구나'
이 날, 그들의 입법 운동을 위한 작은 몸짓은 머지않은 미래에 큰 반향을 주리라 믿는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니 눈이 아주 많이 오고 있었다.
너무나 낭만적인 날, 나는 관성을 이기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지금도 어디선가 당연함을 의심하며 세상을 향해 묻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방법이 소송을 통해서든, 입법을 통해서든.. 심지어 창업을 통해서든
지금도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모두 안된다고 말할 때, 도전하는 그들의 모습을 닮고 싶다.
실패할지라도 일단 도전하는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하루였다.

마지막 출근일로부터 일주일 후, 수료식이 있었다.
시원섭섭한 날이었다.
수원에서 공감 사무실까지 통근이 조금 힘겹긴 했다.
그러나, 한옥의 아름다움으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북촌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우리 변호사님들이 마지막 선물도 주셨다.
조인영 변호사님께서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손 편지를 주셨다.
카톡, 인스타 같은 가벼운 연락이 대세인 오늘날, 손 편지가 주는 감동은 아주 짙다.
조미연 변호사님께서는 아주 귀여운 곰돌이 인형을 직접 만들어주셨다
정말 너무 귀엽다. 귀여운 것은 항상 옳다..!
찍어내는 상품들과는 다른 정성 어린
수제 석고 인형과 손 편지...
낭만을 부르짖는 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못했는데,,..
괜스레 미안한 감정이 샘솟는다.
공감 활동하면서 우리 변호사님들께 도움은 못되고 오히려 많은 것을 받기만 하는 느낌이다.
변호사님들이 내게 주신 모든 것들을 마음의 부채로 삼고
나도 우리 변호사님들처럼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

동료 활동가들과 롤링페이퍼도 작성하고 인생네컷도 찍었다.
"긍정적인"
"도전하는"
"토스왕"
롤링페이퍼 속에서 동료들이 내게 붙여준 수식어들이다.
이 롤링페이퍼에서 정말 많은 힘을 받았다.
나는 사실 그다지 긍정적이지도 않고, 도전하는 마음보단 실패에 두려움이 더 크다.
그러나, 말하는 대로 살고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밖에서는 늘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내 손목에는 "Already"라는 타투가 있다.
"나는 '이미' 성공했다"라는 의미를 담았다.
긍정적인 의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타투로 나의 성공을 새기고 싶은
나의 무의식이 새긴 두려움의 표현이다.
언제나 가슴 한편에 가지고 있던 두려움과 걱정들을 뒤로하고
동료들이 보내준 응원은 다시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토스왕"은 내가 사랑하는 토스에 대해서 동료들에게 하도 일장연설을 했더니, 주어진 수식어이다.
토스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시도 때도 없이 떠들어대서, 우리 동료분들 아마 귀에 딱지가 앉으셨을 거다ㅋㅋ
나의 뻘소리 언제나 진지하게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공감에서 배운 열정과 낭만을 가지고 나는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위해 떠난다.
머지않은 순간에 다시 만날 공감 사람들에게, 또 그 누구보다 소중한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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